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참회왕 에드워드 (문단 편집) == 고드윈과의 맞짱 == 에드워드와 고드윈 가문, 누가 이기든 언젠가는 한번 부딪칠 사이였다. 강력한 군주의 위치를 다시 확립한 에드워드와, 당대 제일의 권력가인 고드윈 가문은 권력에 대한 경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에드워드에게는 고드윈에 대한 개인적인 원한도 있었다. 1036년에 에드워드의 동생 앨프리드는 잉글랜드로 돌아 왔다가 웨식스의 백작 고드윈에게 붙잡혔고, 고드윈은 그를 [[해럴드 1세]]에게 넘기기 위해 배에 태워 보냈다. 배 위에서 고드윈의 부하들은 앨프리드에게 만행을 저질렀다. 벌겋게 달아오른 꼬챙이로 앨프리드의 눈을 찔러 장님으로 만든 것이다. 얼마 뒤, 앨프리드는 그 상처가 덧나 사망했다. 이 일로 인해 에드워드는 고드윈에 대해 원한을 품게 되었다. 결국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1051년 9월, 에드워드에게 그의 프랑스인 처남이 찾아왔다. 그런데 처남의 부하들이 고드윈 백작령의 시민들과 싸움질을 하는 일이 생겼다. 에드워드는 고드윈에게 자신의 처남과 싸운 시민들을 잡아 가두라고 전했으나 고드윈은 에드워드의 처남이 먼저 문제를 일으켰다는 식으로 말하며 방관했다. 열이 받은 에드워드는 이 기회에 고드윈을 손보기로 했다. 에드워드를 따르던 레오프릭 백작과 시워드 백작은 병력을 소집했고, 고드윈 가의 두 아들도 자신들의 병력을 소집해서 대치했다. 그리고 양 측은 화끈하게 한판 붙...지 못하고 양측 모두 미적대며 싸우려 하지 않았다. 이렇게 되니 곤란해진 것은 고드윈 쪽이었다. 왕에게 대들었는데 부하들이 싸우려 하지 않으니 왕이 제대로 군대를 끌고 오면 목숨이 위험한 판국이었다. 에드워드는 고드윈에게 신하를 보내 내 동생을 살려내면 용서해주겠노라고 조롱했다. 고드윈은 저항을 포기하고 그의 아들들과 함께 [[플랜더스]]와 [[아일랜드]]로 도망쳤다. 고드윈을 내쫓은 에드워드는 내친 김에 자신의 아내인 고드윈의 딸도 수도원으로 쫓아버렸다. 1년 후, 고드윈과 아들들은 상당한 지지를 받으며 잉글랜드로 돌아왔다. 그리고 내전을 두려워한 레오프릭 백작과 시워드 백작도 이번에는 에드워드 왕 편을 들지 않았다. 에드워드 왕은 빡쳤지만 별 수 없었고, 그들의 백작 지위를 다시 인정해 줘야 했다. 그가 쫓아보냈던 아내도 다시 불러와야 했던 건 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